사진이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 그것을 따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바로 프레이밍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프레이밍이란 이 시간과 공간을 잡아내는 작업으로 바로 이 점이 회화에서의 구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국 프레이밍과 촬영은 동의어란 뜻이 되는데, 프레이밍은 촬영만이 아니라 실은 사진 그 자체와도 동의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프레이밍과 구도는 어떻게 다른가.
첫째. 사진과 회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하는 예술이다.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는 만큼 사진의 구성방법과 회화의 작화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하나가 프레이밍이라면 다른 하나가 구도인 것이다.
사진도 평면의 하나라는 점에서 회화적 방법을 도입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화적 수단으로서의 사진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회화적 사진의 경우라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사진은 단순한 평면이 결코 아니다.
현실 공간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움직이고 있는 평면이 사진적 평면으로,
이 점이 회화적 평면과 다른 점이다.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동적 영상이나, 적어도 어떤 움직임을 찍는 사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움직이지 않는 바위라 해도 움직임은 거기에도 있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바위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과학적, 생물학적 입장이지 예술적, 철학적 입장은 아니다. 사진적 입장도 그래서 아니다.
사진에서 모든 사물은 살아 움직이고 있고, 이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요 프레이밍인 것이다.
둘째, 구도란 백지 위에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점진적으로 형상화해 가는 화면 구성 방법인 데 비해서,
프레이밍이란 현실 세계에서 작가가 발견한 진실을 선별 적으로 구성해 가는 화면 형성 방법이다.
즉 구도가 '덧셈'의 원리로 하나하나 더해 가면서 화면을 이루어 감에 비해,
프레이밍은 '뺄셈'의 원리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가면서 화면을 형성해 가는 것이니,
완전히 상반된 구성방법인 것이다.
셋째. 구도가 현실과는 직접적 관련없이 백지위에 필요한 대상을 정리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프레이밍은 현실에서 필요한 부분을 따내는 작업을 가리킨다.
현실은 각자가 구성하기 좋게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마음먹은 대로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사진을 찍는 방법에 차이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사진과 회화의 근본적이 차이점이 그대로 프레이밍과 구도의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방법과 그림을 '그리는'방법의 차이인 것이다.
'찍는'것이 동적임에 비해 '그리는'것이 정적이라는 것.
'찍는'것이 무작위적임에 비해 '그리는' 것이 작위적이라는 것.
'찍는' 것이 순간적.반사적임에 비해 '그리는'것은 점진적. 의식적 이라는 것
등을 함께 생각해보면 그 차이점이 보다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물러나 보면, 프레이밍이나 구도는 결국 화면 구성 방법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굳이 설명하는 것은 사진과 회화의 근본적 차이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회화적 구도의 원칙을 생각없이 도입하여 '죽은사진'을 만드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데에 그 뜻이 있다.
프레이밍이든 구도든 촬영에 당해서는 여기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구도가 되어서 이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프레이밍이라 해도 여기에 구애받아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히 아마추어 작가들 사이에서 구도가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책도 나오고 있다. 구도란 이름 밑에서 회화적 화면 구성 방법을 가르치고 배운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구도를 알아야만 하고, 그것이 사진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촬영에 임해서는 일단 구도를 의식하지 말라고 했거니와, 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지 구도가 아니다. 사진에서는 셔터 찬스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
구도는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지 못한다.
아무리 구도가 좋아도 결정적 순간을 놓치고 나면 그것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가 졸립다고 하품을 한다고 하자.
그때 중요한 것은 입이 크게 벌어진 순간일 것이다.
핀트가 조금 덜 맞아도, 셔터를 급히 누르느라고 조금 흔들려도,
그 작은 아가의 하품하는 모습이 제대로 찍혀 있다면 아가의 귀여움에는 아무런 손상이 가지 않는다.
핀트가 아무리 잘 맞고, 구도가 기가 막혀도 입이 닫힌 뒤에는 그 사진을 찍은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구도를 잡느라고 그 순간을 놓치면 그처럼 아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인물사진이나 사건을 찍을 경우, 아무리 멋진 구도를 잡아도 인물의 표정이나
사건의 핵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보석 잃은 상자처럼 헛것일 뿐이다.
물론 내용도 좋고 구도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야 말할 것도 없다. 구도를 맞추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구도에 맞춰야 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사진의 내용보다 형식에 쏠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구도는 내용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렇게 형성되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구도에 맞추면 사진에 생기가 없어지고 형식적인 외형만 보일 뿐이다.
현실은 혼돈 그 자체이다. 그 어지러운 현실은 다양한 요소, 다양한 모습, 다양한 질서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그 현실이 어떻게 정리되면 어떤 뜻을 가지게 된다는 일정한 규칙을 세울 수가 없다.
애초에 이러한 현실을 어떤 형식적인 틀로 묶어 정리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현실 속에서 현실에 숨겨진 질서를 찾는 것. 이것이 사진의 구도, 즉 프레이밍이라는 것이다.
소위 구도라고 하는 인위적 질서 위에 현실을 정리하는 것이 어째서 무리인가가 이해될 것이다.
셋째, 구도를 안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구도를 알아야
내용에 알맞은 구도를 택해 성공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얼른 생각하면 그럴 듯하다. 그러니 그렇지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진을 말이라 했거니와, 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말에는 문법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의사가 전달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문법에 맞았다는 뜻이 된다.
문법에 맞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고, 그 말도 되지 않은 말이 전달될 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법은 말을 성립시키는, 말의 '구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의 얼마나 되는 사람이 문법에 정통할까. 아니 조금이라도 문법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외국 사람을 제외하고, 말을 할 때에 문법을 생각해 가면서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법을 생각해 가면서 말을 해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문법을 모른다고 말을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문법에 정통하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문법에 정통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시인이나 소설가 중 과연 몇 사람이
문법에 정통할까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시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문학청년이 시나 소설을 쓰기 위해 문법을 공부한다면 얼마나 우수울까.
그런 것을 아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구도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도에 관한 지식이 오히려 사진을 찍는 데 방해가 된다면 독자 여러분들이 이해해 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말하고자 할 때 문법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말을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 고교 6년간을 배우고도 영어 회화 한마디 못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영어 교육이 문법 교육으로 치우쳤던 탓으로, 문법에는 정통해도 정작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비정상적인 인간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회화할 기화가 거의 없었던 탓에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문법 교육이 보다 적절한 영어 교육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말을 배워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면 잘못된 교육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시인은 때로 문법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이 오히려 멋진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러면 문법 학자들이 그 이유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새로운 문법체계로 학설화한다.
그래서 정치법밖에 없었던 수사법에 도치법이 생기고, 직유밖에 없었던 비유법에 은유법과 대유법이 생기게 되고,
간결체에 대하여 만연체라는 문체가 생긴 것이지, 수사법적 지식에 통달한 문인에 의해 걸작과 명문이 탄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독자를 위해 한가지만 더 보충하기로 한다.
사진을 찍기 전에 구도를 생각하는 것은 마치 산책 나가기 전에 인력의 법칙에 대해 알아 보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법칙과 규칙들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추론된 것이다.
이들 법칙은 작품에 대한 반성과 사후 검토에 의해서 이뤄진 산물일 뿐인지 결코 창조적 충동을 위한 방법은 아니다.
산책을 나가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인력의 법칙을 알아본다고 해서 산책이나 달리기에 무슨 도움이 될까.
마라톤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치자.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 해보면 그가 달리던 속도에 미친 지구 중력의 영향이나,
그가 아침에 먹은 식사의 열량이 계산상 나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런 것들을 계산해 가면서 달렸기 때문에 신기록이 수립된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자기 몸 컨디션에 맞게 평소 연습대로 열심히 뛰다 보니 결과적으로 신기록이 수립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다음번에도 또 우승한다는 보장은 아무도 못한다.
말을 배우기 위해서 엄마의 말을 따라하듯,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명작을 찾아 읽듯,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남의 좋은 사진, 고전으로 남아 전하는 명작이라든가 새로 나오는 충격적인 영상들을 많이 접할 필요는 있다.
거기에서 구도나 조명등을 찾아 배우려 하지 말고, 그들의 위대한 정신을 찾아보고,
명작으로 남게 된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구도란 그리는 가운데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지 그림을 그려 가면서 학습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상에 집중해서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프레임을 잡다보면 거기에 그 사진에 알맞은 구도가 발견되는 법이다.
앞에서 인용했던 에드워드 웨스턴의 말을 조금만 더 인용해 보기로 한다.
훌륭한 구도는 사물을 가장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그것은 모든 창조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르침을 받아 배울 수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내적 성장에 의해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사진을 많이 보고, 열심히 그리고 많이 찍다 보면 거기에 구도라고 하는 외적 형식은 저절로 익혀진다.
구도에 맞춰 찍은 사진은 문법에 맞추느라 애를 쓴 글처럼 맛없는 사진이 되기 쉽상이다.
따라서 구도에 맞추려 들지 말고, 대상에서 얻은 느낌으로 곧장 파고들어 찍는 훈련을 쌓는 것만이 명작을 남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에서조차도 벗어났을 때 비로소 걸작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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