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필호 홈페이지입니다.

▒▒▒ 한장의 사진 ▒▒▒
사진은 카메라가 담지만 사진 속의 영혼은 사람이 담는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함이다.

칼 가는 할아버지

우리 큰애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매일 아침 목포 시내를 관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수를 뒷자리에 태우고 가는 도중
시내 한 귀퉁이에서 칼을 갈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어릴 적에는 많이 봤었지만 요즘 들어서 정말 보기 힘든 장면이다.
문득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빨리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보니
아직도 열심히 칼을 갈고 계신다.

길 건너 차를 대고 시동도 끄지 않은 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딱 한 자루밖에 없는 칼을 갈아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했다.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점잖게 할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자 흔쾌히 승낙하신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쩐다냐...카메라를 집에 두고 왔다.
그래서 한 5분 후에 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자동차 타이어에 불이 나도록 달려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갔다.

수업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사진을 찍기 전에 할아버지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식돌 두 개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열심히 하신다.
가격이 얼마니....
이것은 언제 사용하는 거니...
이제는 호출을 받고 일을 하신다고...등등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하시지 말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사용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당장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신다.
그렇게 되면 칼이 물러져서 얼마 사용하지 못한다고
칼은 이렇게 식돌에 갈아야 진짜다고

수십 장을 찍은 것 중 대부분을 버리고 몇 장 남은 사진 중에
이 사진이 가장 손이 가는 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느낌 때문일까
수십 년간 해오신 칼갈이 일 때문에 굵어진 손마디가 전혀 보기 싫지는 않았다.
아니 도리어 그 굵은 손마디가 더 애착이 간다.
89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힘주어 밀어내는 손끝에는 아직도 혈기가 왕성했다.

70여 세로 보인다는 내 말에 흐뭇하게 웃으시는 할아버지의 미소
구릿빛이지만 밝게 웃는 그 환한 얼굴이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나의 입가에도 미소를 머금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진을 찍은 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말을 하고 일어나면서도
할아버지의 헐거워진 런닝구와 노란 손목시계가 다시 나를 잡아당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ㅜㅜ
돌아보며 눈인사로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순간
뒷전에 보이는 광고가 그리 싫지만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허락을 받고 찍을 때가 있고 그냥 몰래 사진을 찍을 때도 있지만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허락을 받고 난 후 더 부자연 스러울때가 있으니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몰래 찍는 것도 참 송구스러우니 이것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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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상작>2019 노인인권 사진 공모전_대상

사진가: 홍필호

홍필호
사진이란 감상자의 몫이기에...........................
사진에 대한 멘트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만
이상하게 이 사진에는 글을 남겨 보고 싶네요.

2005-09-15
08:39:55

몽샤우
사진에 대한 직접적인 멘트라기 보다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말씀해주시네요...
공감하고 배울점이 많은 가르침의 글 입니다.

교감되는 순간의 무의식....
대화를 나누고,
그 분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고,
마음으로 안부를 전하는.
..............

아마 셔터는,
그 들숨과 날숨의 경계 어디쯤에서 자연스럽게 끊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분의 환한 웃음을 보면요...

2005-09-15
11:51:14

땡스맘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셔서인가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입니다.
지금 식돌에 갈고 계신 칼은
제눈엔 중화요리용으로 보이는데요.

저칼 집에서 못갈아요.
절대로...
그러니 할부지 저희집으로 모셔다 주세요.ㅎㅎ

홍샘의 촬영기 잘 읽었습니다.
그리하야 오늘 점심은
해삼 새우가 넉넉히 들어간 칭따오볶음밥 묵으러 휭~~~

2005-09-15
12:46:12

그림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05-09-15
12:49:35

山草 / 崔熙伯
홍필호님 안녕하세요.
山草가 몇자적어놓고감미더.
역시 홍필호님께서는 職業에 딱맞는 作品과德談을 남겨놓았습니다.
이老人이 일하는 모습은역시 黑白작품이딱이고요 내용설명은 홍필호님의 職業에맞는 德談을 하셨으니
이山草가 그냥 지나갈수가 없어서 느낀대로 표현을 하고가니 홍필호님 욕하지나 마시길*^*^*^*

2005-09-15
13:59:59
[삭제]

선경
표정이 밝아 보여 참 좋습니다....
좋은 사진이란 조급함이나 과욕이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 읽는 것도....때로는 참 좋습니다.

2005-09-15
14:31:24

김광배
사진를 찍기까지의 정성스러운 수배 과정...
수 십장에서 한장을 추려 내는 냉정한 선택...
할아버지와 홍샘의 끈끈한 마음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결과물을 얻어...
한장의 작품이 이루어 지다니,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2005-09-15
19:15:15

홍필호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마음이 닫혀서일까?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가사처럼
20살의 설렘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게 아쉽다.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어르신의 모습은
나에게 또 우리에게
계산된 삶을 살지 마라 다그치신다.

하지만
그 묵직한 나무람이
오늘은 더 좋다.

2019-11-01
10: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