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사진예술 95년 2월호] -''주제사진부문 독자 콘테스트''의 심사위원인 전규완 님의 글
주변에서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스럽고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그들이 사진을 배우고자 애쓰는 모습은 어떤 면에선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사진이 안되어 발버둥치고 괴로워하고 허둥대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보게 되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저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방황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과연 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사진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니 그건 어렵다 치더라도 과연 사진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찍어야 하는 것일까?
사진을 처음 배우려고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사진을 배운다는 것을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이 좋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테크닉을 배우고 그것을 알고 익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믿는다.
테크닉-좋다. 다양한 테크닉을 익히면 물안개가 보얗게 낀 샛강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찍을 수 있을 것이고,
빨갛게 노을지는 추암의 환상적인 바닷가 풍경도 찍을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테크닉을 잘 모르면 살색 고운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도 찍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진의 전부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도 꼭 그런 흉내를 내야만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요 회의이다.
예술에 있어서 모방론의 역사는 깊지만 그것은 복제로서의 모방,
실물같음의 모방보다는 한 차원 높은 미적 가치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어떤 사진가 한 분이 ''사진을 똥누듯 하라''고 늘상 권하셨는데 나는 ''밥 먹는 듯하라''고 권하고 싶다.
안 먹으면 배고프고 배고프면 먹게 되는, 어떤 사람은 후르륵거리며 먹고 어떤 사람은 펑펑 퍼먹고,
As you like, 그야말로 좋으실 대로, 그것이 바로 사진 찍는 자세,
그렇게 찍으면 입맛에 맞는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제 입맛에 안 맞는 사진은 역시 남에게도 역겹다. 왜냐하면 사진가의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 갑돌이와 고아출신 을순이가 길을 가다가 거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부자 갑돌이는 ''어이구 저런 병신, 벌어서 먹고 살지,
저건 게을러서 그래'' 그러나 고아 출신 을순이는 자기가 어려웠을 때 생각이나
그것이 측은하고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
사진을 배우는 건 좋다. 기술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다 더 중요한 건 ''관점''의 확보이다.
일관된 ''관점'', 말하자며 세계관도 좋고 인생관도 좋고,
어떤 본질에 대한 관점도 좋고 사회를 보는 자신의 관점도 좋고
그것을 피력하는 대화의 하나가 곧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나의 사진관이다.
그러려면 제 생각대로, 제 맘대로, 제 보이는 대로,
제 찍고 싶은 대로 찍어야 제 마음이 나타나고 그것이 곧 사진으로서의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옛 고향의 풀이 그리워 풀을 찍고, 어릴 때 곰돌아들던 골목길이 그리워 골목을 찍고,
늘상 내가 딛고 다니는 땅이 마음에 걸려 땅을 찍고, 이것이 정말 사진을 찍는 맛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안 찍고는 못견디는 것, 그것이 곧 ''예술 혼''이 아닐까?
나는 사진전을 잘 못 가보는 편이지만 어쩌다 가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과연 저것이 제 사진을 알고 찍어서 걸어놓고 보라는 것일까?
초심자일수록 그러한 자기 동일성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사진을 ''한건주의''로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이왕에 길어졌으니 한마디만 더해 보자.
작년에 광주의 ''소쇄원''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그 관리인의 말이 내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쇄원의 담장과 지붕을 망가트리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닌 사진가들이라는 것이다.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는다며 겁없이 안 올라가는 곳이 없고 금지구역이 없다는 것이다.
그 놈의 콘테스트가 뭔지 멋있게 찍어 입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짓을 하고도
미안한 마음보단 한건 했다는 것이 더 즐거운 건 아닐까?
왜 이런 구질스런 말을 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정신적 일치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사진 자체에 대한 열정에서 사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열정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시골에 가보며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인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폐가가 되어가고 있는 집-. 그것이 안타까워 사진을 찍는 것이지
호사가인 취미 사진가를 위해 폐가가 있는 격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란 말이다.
달동네가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사회 본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열정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지,
멋진 사진 한 장 건지기 위해 가난한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세파에 찌든 할머니의 주름살은 삶에 대한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안타까움과 열정으로 접근해야지
한 장 찍고 멋지게 나온 그 사진에 즐거워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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